대표적인 가축 전염병인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이 어느덧 연례행사가 됐다. 올 겨울에도 두 질병은 어김없이 발생했다. 지난 11일과 13일에는 전북 김제와 고창의 돼지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병했다. 앞서 지난해 10~11월에는 전남 영암 등에서 AI 확진 판정이 나왔다. 여름에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가 겨울에 재발하는 현상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반복됐다.

대표적인 ‘만성질환’인 감기처럼 구제역도 만성질환화 되면서 그 힘이 줄어든 것일까. 이번 겨울들어 발생한 구제역·AI의 확산세는 예년보다 한풀 꺾인 모양새다. AI의 경우 철새 이동 등 변수가 남아있긴 하지만 지난해 12월22일 이후 AI 방역지역에 대한 이동제한이 해제됐다. 발생한 것도 지난해 11월15일 전남 영암이 마지막이었다. AI보다 확산시 피해가 심각한 구제역은 올해 사상 처음으로 전북 지역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지만 일주일 이상 추가 발생 소식은 없다. 잇단 학습효과에 따라 구제역 대응에 성공한 것일까.

구제역이 발생한 경기도 안성시의 한 농가 앞에서 시청 방역팀 직원들이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구제역 강력 대응에 대한 필요성은 2010~2011년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확산됐을 때 강하게 제기됐다. 당시 구제역은 2010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21일까지 총 145일간 지속됐다. 이 기간 구제역이 총 153건 발생했다. 발생 지역도 11개 시·도, 75개 시·군에 달했으며 6241개 농가의 소, 돼지, 염소, 사슴이 총 347만9962마리가 구제역 확산 방지를 이유로 살처분당했다. 당시 살처분으로 인한 피해액만 3조원에 다다른 것으로 추산된다.

2014~2015년에 걸쳐서도 147일간 구제역이 발생했다. 발생지역은 7개 시·도, 33개 시·군이었으나 발생건수는 185건으로 더 많았다. 살처분 규모는 전에 비해 줄었지만 17만2798마리의 돼지가 구제역 확산 방지 차원에서 매몰됐다.

구제역은 축산 농가에 큰 타격을 줬다. 소·돼지 등에 구제역이 감염됐을 때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살처분 때문에 시장에 판매할 수 있는 가축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었다. 살처분한 가축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도 문제가 됐다. 가축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가 식수 및 상수원을 오염시키는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면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며 백신 접종을 미뤄온 정부의 대응도 확산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2014년 2월2일 진천군 이월면 한 오리농가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살처분을 위해 오리를 몰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또다시 구제역이 장기간 발생하자 정부는 ‘가축전염병 예방법’을 개정했다. 구제역이나 AI가 발생할 때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취지였다. 전염을 막기 위해 발생 지역 차량 및 관계자의 이동을 일시적으로 중지하는 ‘일시 이동중지(스탠드스틸)’ 명령 발령 시점을 앞당겼고, 발생 지역 가축을 외부로 반출하지 못하도록 강제성 있는 ‘반출 금지 명령’도 내릴 수 있게 했다.

이달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위 두 사항이 처음으로 시행됐다. 스탠드스틸은 그간 국내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구제역 바이러스가 나타났을 때 시행할 수 있었는데, 구제역 발생과 동시에 발령된 적은 없었다. 가축 반출금지 명령 역시 이번에 처음으로 내려졌다. 지난해 구제역 확산 당시 전국에 구제역 백신을 접종했던 것도 효과를 보고 있다고 농림축산식품부는 보고 있다. 축산 농가는 구제역 감염에 대한 우려에도 백신 접종을 기피해왔다. 백신을 접종하게되면 도축한 고기에 지방질이 균등하게 퍼져있지 않는 등 상품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AI의 경우는 지난해 말부터 빅데이터 정보가 방역에 쓰이고 있다. 닭·오리 등 가금류의 사육 정보 및 이동 정보가 AI의 확산을 유추할만한 정보를 제공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아직 수집된 빅데이터는 초기 단계지만, AI 대응에 충분한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살아 있는 동물을 대거 파묻는다는 이유로 구제역·AI 발생 농가 주변 지역의 가축까지 모두 매몰했던 살처분 양식도 지난해부터는 바뀌었다. 구제역·AI가 발생한 농가의 가축은 최초 발생시 모두 살처분되고 있고, 이후 확산되는 경우에는 발생 농가에서도 선택적 살처분을 실시하고 있다.




일단 이번 겨울의 구제역 확산세는 크지 않아 보인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기존 사례에 대한 학습이 가축 전염병 확산 대응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국내에서 발견되지 않은 바이러스가 해외 등지에서 새로 유입되는 경우, 그래서 지난해 ‘효과가 없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던 구제역 백신이 새로운 종류의 바이러스를 막지 못한다면 재발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구제역·AI 백신을 국내에서 개발할 수 있도록 하고, 비좁은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는 가축들의 사육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라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온다.

Posted by 윤승민